여성의 날을 기억하며, The Sweethearts of Rhythm처럼 훌륭한 여성 재즈 연주자들이 존재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남아 있는 소중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재즈 뮤지션, 댄서, 영상 및 시각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과거의 여성 재즈 예술가와 현대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Women in Swing 댄스필름의 마지막 이야기와 WIS Jazz Festival의 시작을 소개합니다.

"자유롭고 낭만의 재즈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다."

별의 시선

촬영 일주일 전, 우리는 촬영 장소를 급하게 변경해야 했다. 덕분에 촬영 시작 시간이 오전 7시로 앞당겨졌고, 준비를 위해 스탠바이는 새벽 5시부터 진행되었다. 카메라 감독, 조명팀, 에프터아워즈 스태프 모두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을 고려해, 우리는 촬영 전날 에어비앤비를 빌렸다. 그래서 그날 밤, 날다의 차에 우리집 이불 세트 4개를 싣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한밤 중에도 반짝거리기 바쁜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을 가진 곳이었다. 그 때 부터 였나, 우리들의 현실감이 사라지기 시작한 순간은 

5시에 촬영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유정이(조명감독)와 감독님과 함께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촬영 장소는 새하야고 커다란 호리존이었다. 기본 조명을 사용하며 스탠드 조명을 추가 대여할 생각이었는데, 답사때 보았던 천장 레일 조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천장 조명을 사용하면 80~90만 원이 추가되는 상황. 고민 끝에, 조명팀과 감독님과 함께 일단 기본 조명으로 체크를 했다. 그리고 천장 조명을 켠 순간 내 뒷통수에서 짧고 굵은 감탄사가 들렸다.

감독님 : "웕!💥😳"

가나는 그 순간 그의 반짝이던 눈빛을 보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더 좋은 영상을 위해 과감하게 결제했다. (으어... 진짜 안되는데.. 충동결제 90만원ㅠ)

6시, 하이라이트 장면을 위해 플로리스트 재이님이 며칠 전부터 공수해주신 싱그러운 꽃과 식물들. 아름다움으로 이 곳을 채워주는 모습과 함께 촬영 준비가 시작되었다. (SNS를 통해 게릴라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걸 보고 알게 된 재이님. 꽃으로 삶의 다정을 만드는 사람이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덥썩 제안했는데 그녀는 깊고 올망한 눈빛으로 프로젝트를 긍정해주었다.)

댄서들이 준비를 마치고 리허설을 시작했다. 스윗하트의 음악이 흐르고, 루나가 준비해준 아름다운 톤의 의상을 입은 16명의 댄서가 새하얀 호리존 가운데 섰다. '탁!' 조명이 켜지고 댄서들은 테이블 위를 춤추며 거닐었다. 집중의 소음으로 가득 찬 공간, 스윙의 낭만. 그 순간은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였다.

촬영 시간이 빠듯했기에 우리는 살짝 아쉽더라도 타임테이블을 철저히 따라가며 진행했다. 소품체크, 앵글 체크, 시간체크 체크체크체크무늬가 되어가며 다음씬들을 스텐바이한다.날보며 끊임없이 손목을 쳐주던 유정이 덕분에 조명팀도 친구들도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날다는 내가 본 날다 중에 가장 집중력이 높으면서 급한(?)상태가 되었다. 감독님 역시 높은 퀄리티 씬들을 고민하며 서두르는 게 살짝 아쉬운 듯했지만, 모두가 120% 집중하며 촬영에 몰입하는 순간은 마치 영화 같았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스태프와 댄서들 모두 지쳐갔지만, 이 지침조차도 영화 속 서사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한 공간에서 한 필름을 찍으면서도 댄서들과 안무에 집중한 날다에게는 앵글과 전체 그림을, 아름답게 앵글안에 담아내는 것에 집중한 감독님에게는 안무들의 연결을 전하며 이 둘을 가장 가까이서, 또 한발자욱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한 작품을 위해 춤과 영상이라는 각자의 예술속으로 들어간 그들이 아름다웠다. 

날다의 시선

우리의 안무는 서로와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하고, 동일한 감정을 향해 온 몸을 뻗어내야 한다. 이른 아침부터 낯선 환경에서 춤을 춘다는 것. 짧은 시간에 최대 퀄리티를 뽑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만든 에너지가 수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남겨진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가득 찼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맞춰 바삐 움직인다. 촬영 직전 바뀐 장소라 나 역시 처음 와본 장소이기에 호리존에 들어와서 공감각을 익히고, 댄서들의 컨디션을 살피고, 별과 무거운 테이블을 옮겼다가, 처음보는 (만지면 안될 것 같은) 장비를 보고 가볍게 조작하는법을 익히기도 했다. 동시에 여러 사건(?)이 발생할 때 즈음 마이크가 내 손에 들렸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어색한 디렉을 시작으로 아침 7시와 빨간 공간이 주는 알 수 없는 조화에 적응하려했다. 그러다 별과 눈이 마주치며 "우리 인사도 안나누고 냅다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고쳐들고 모두의 이름을 외친다. 갑자기 냉수마찰을 한 듯이 정신이 차려지며 이번엔 내 뇌에서 나에게 외친다. "..현실이야."

창문이 없는 공간이라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달려가는 지 씬을 쳐낼 때마다 급박해졌다. 나는 어느새 몸이 아닌 입으로 춤추는 법을 터득했고, 그녀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소리쳤다. 씬마다 등장하는 댄서들이 다르기 때문에 잠시 쉬는 타임이 생기면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도 자신의 차례가 되면 구석구석 살아있는 에너지로 춤추는 댄서들. 1,2층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조명 스텝들의 발. 비주얼 감독의 댄서만큼 춤 추듯 촬영하는 상체. 그리고 우리의 뒷모습을 가장 많이 보고 담아 준 가나의 따듯한 눈빛. 그리고 별이가 적어준 그 공간에 함께한 감사한 사람들

문득 루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가 먼저 떠나기 5분 전, 뽈 호링 루비가 가운데에서 먼저 시작하는 씬을 다시 찍기로 했는데 그녀가 갑자기 저- 아래 있던 아드레날린까지 끌고 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마침 그녀의 정확히 맞은 편에서 보고 있던 터라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찍으면 찍을수록 댄서들의 몸이 더 풀려서 10분만 더 아니 1번만 더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런 씬이 많아서 '정말' 찍어야 하는 씬을 결정 해야했다. 지나가는 시간 속 우리의 모든 결정이 최선인 것을 알기에.. '컷'을 외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댄스필름에서는 벽 끝까지 스텝을 밟는 모습이나 힘을 내어 화이팅을 외치는 목소리는 담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스윗하트의 과거 영상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녀들의 비하인드와 기록을 보며 여기까지 온 것처럼 이 댄스필름을 찍기 위해 했던 고군분투와 도전들을 잘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9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촬영이 끝난 후, 우리는 하얀 호리존 바닥에 남겨진 댄서들의 발자국을 보았다. ‘이걸 닦아야 하나?’ 고민하며 물티슈를 들고 하나둘 닦아보려 했지만, 결국 페인트칠을 새로 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우리의 낭만 가득했던 발자욱 위로 이제 새하얀 페인트가 덧칠해지고, 그 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새겨질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과거의 어느 밤 12시 퇴근길이던 내게 날다가 전화를 걸어 “이 음악으로 필름 비디오를 찍어보고 싶어!”라고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던 그 순간이 스쳐갔다. 댄서들을 섭외하고, 감독님을 찾고, 스크립트를 만들고, 안무를 만들고, 뉴스레터를 쓰고, 연습하고, 조명을 세팅하고, 소품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오마주처럼 지나며 촬영장을 떠났다. 

그렇게 촬영날이 지나고, 이제는 Woman in Swing 파티날이 다가온다. 이날의 촬영이 우리의 추억이 되고, 순간의 낭만이 되고, 누군가의 영감이 되길. 우리의 삶도 이렇게, 새로운 경험으로 덧칠해지길 바라며.

우먼인스윙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땐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미팅을 위해 대전까지 내려와주신 별님과 레트로한 느낌의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스윙댄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어 너무 재밌었어요.

새로운 것에 항상 흥미를 가지는 성격이라 제안을 받아들이고 기획과 구상을 진행하며 스윙 댄서분들이 생각하는 예술관을 직,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 다님의 열정도 굉장했습니다 필름의 안무를 맡는다는 건 엄청난 부담감과 노력이 필요한데 카톡으로 받은 영상, 사전 리허설, 본 촬영 날까지 아름다운 순간뿐이었어요!

그 속에 참여해 주신 모든 댄서분들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전국에서 흩어져 활동 중이신데 불구하고 이 한순간을 위해 모여주셨다는 것에 놀라움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스윙씬에 다양한 시도들이 생겼으면 좋겠고 행복하게 오래 춤춰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작업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댄스필름으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리 없죠 ! 상영회와 함께할 WIS 재즈 페스티벌을 위해 프로젝트의 확장된 의미를 정리하고, 구상하고, 공간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하듯 누군가와의 함께가 필요한 우리에게 WIS 재즈 패스티벌을 같이 만들어 갈 든든한 새 멤버가 필요했고 하야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동시에 이번 WIS 재즈 페스티벌에서 재즈 피아노를 연주 해 줄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녀 덕분에 이번 장소도 찾을 수 있었고, 시작부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소중한 멤버에요.

첫 줌미팅 때부터 마치 원래부터 함께한 듯 편안함이 느껴졌던 그녀. 하야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읽어보세요.

나는 쑥 던졌고, 그는 쏙 물었다.

유난히 한가해진 1월, 나는 재미있는 일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스토리를 SNS에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님은 작년 하야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아트&라이프 인사이트 모임에 한번 참여한 적이 있다) '재즈음악. 스윙댄스. 여성의 날. 여성 빅밴드' 단어가 들어 간 내용이었는데 보자마자 날짜부터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작한 필름도 보았는데 고민한 흔적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영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일을 먼저 벌여서 참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두 번의 주말과 설 연휴가 지났고, 그 사이에 디테일을 함께 더 만들어 나갔다. 같이 만들어가면서 구성원으로의 자부심도 있고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 좋은 의미를 나누고 재즈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용기를 낸 After:hourz의 뜻에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나도 작업기를 하나씩 올려볼 예정이다.

가나 🍫

나의 마음을 우먼인스윙으로 녹일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를 지지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 친구들이 펼치는 그림들이 좌절되지 않도록 옆에서 같이 서있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몇 명의 친구가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더 커졌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자극적인 순수한 빛이 돌았다. 그게 나타나는 순간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도 확 떠진다. 현장에서 그 순간을 같이 목격한 친구와 소름 돋았다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며 서로 본 광경을 공유하기도 했다.

마침 구독하는 뉴스레터의 내용 중 ‘누군가의 관심과 지지가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하게 만든다. 그들의 지지 덕분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라는 말이 있었다. 공감됐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과정 속에 있었다. 그렇게 우먼인스윙이 하나하나 채워져가고 있다.

날다 🐦

촬영 날, 폭풍같은 새벽과 오전 그리고 낮. 늦은 점심까지 해치우고는 많은 짐을 싣고 우리집으로 향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날이고, 이 감정 또한 오늘 뿐인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을 위해 너무 많은 대화를 했던 우리는 집 가는 길 만큼은 조용히 멍 때리며 가자는 웃픈 약속도 했었다. '소품으로 썼던 케잌에 촛불을 꽂으면 어떨까. 더 꿈이었던 하루가 될까 아니면 끝났다는 마음에 큰 숨이 쉬어질까?' 하며.

머뭇거릴 때 먼저 질러주고, 두려울 때 같이 두려워해주고, 빈 곳을 채워주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찾아주는 친구들이 있다. 어느새 우리의 재즈는 아름다운 꽃과 사람으로 가득 찬다. 틈을 가져서 좋다. 고마운 사람들이 모인다. 그저 16명의 스윙댄서들과 춤을 추고싶다는 마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 줄 몰랐다. 서로에게 믿음이 있어서 감사해. 고맙다 친구들 ! 

3월 8일에 만나요.